항공사는 빈 좌석이 생기면 손해인데 왜 마지막 순간까지 가격을 낮추지 않을까?

비행기표를 예매하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같은 비행기, 같은 일반석인데도 어떤 사람은 저렴하게 구입하고 다른 사람은 훨씬 비싼 가격을 지불합니다. 심지어 출발일이 가까워졌는데 빈 좌석이 있어 보여도 항공권 가격이 생각만큼 내려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깁니다.

비행기가 빈 좌석을 남긴 채 출발하면 항공사는 손해일 텐데, 차라리 마지막에 싸게라도 판매하는 것이 이익이지 않을까요?

비행기가 출발하는 순간 판매하지 못한 좌석의 가치는 사실상 사라집니다. 오늘 팔지 못한 옷은 내일 다시 판매할 수 있지만 오늘 출발한 비행기의 빈 좌석은 내일 다시 판매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항공사가 모든 남은 좌석을 무조건 싸게 판매하지 않는 데에는 수요예측, 가격차별, 수익관리, 고객의 지불의사 등 흥미로운 경제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항공권은 같은 좌석인데 왜 가격이 다를까?

서울에서 해외의 특정 도시로 가는 비행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같은 일반석에 앉는 승객이라도 항공권 구입가격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몇 달 전에 특가 항공권을 구매하고, 누군가는 출발 한 달 전에 일반 운임으로 예약하며, 또 다른 사람은 출발 직전에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할 수도 있습니다.

비행기 좌석 자체가 갑자기 더 좋아진 것은 아닙니다.

항공사가 좌석이라는 제한된 상품을 서로 다른 조건과 가격으로 판매하기 때문입니다.

항공권에는 예약 변경이나 환불 조건, 수하물, 마일리지 적립 등 다양한 조건이 붙을 수 있으며 같은 좌석 등급 안에서도 여러 운임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보는 항공권 가격은 단순히 좌석 하나의 원가에 일정한 마진을 더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비행기가 한 번 뜨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든다

항공사의 수익구조를 이해하려면 먼저 비행기를 운항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해야 합니다.

항공기는 연료를 사용하고 조종사와 객실승무원 등 여러 인력이 필요합니다. 공항 이용과 정비, 항공기 운용에도 비용이 발생합니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승객 한 명이 추가된다고 똑같은 비율로 증가하는 비용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미 운항하기로 결정된 비행기에 승객 한 명이 추가 탑승한다고 해서 조종사가 한 명 더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 때문에 출발 직전 남아 있는 좌석을 저렴하게라도 판매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빈 좌석을 무조건 싸게 팔면 생기는 문제

항공사가 출발 직전에 남은 좌석을 항상 대폭 할인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사실을 소비자들이 알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시간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미리 항공권을 구입하지 않고 기다릴 가능성이 생깁니다.

“어차피 출발 직전에 남는 좌석을 싸게 팔 테니까 조금 기다려보자.”

이런 행동이 많아지면 정상적인 가격으로 미리 항공권을 구매하려는 수요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즉, 빈 좌석 하나를 싸게 판매해 얻는 추가 매출보다 원래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있었던 고객까지 기다리게 만드는 손실이 더 커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공사는 단순히 ‘빈 좌석을 모두 채우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목표는 한정된 좌석으로 최대한 효율적인 매출을 만드는 것입니다.

항공사가 중요하게 보는 ‘지불의사’

모든 승객이 항공권에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은 같지 않습니다.

휴가를 몇 달 전부터 계획한 여행객은 일정에 여유가 있어 가격을 비교하고 저렴한 항공권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반면 갑작스럽게 해외 출장을 가야 하는 사람은 상황이 다릅니다.

내일 반드시 특정 도시로 가야 한다면 항공권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구매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경제학에서는 소비자가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기 위해 최대 어느 정도까지 지불할 의향이 있는지를 지불의사(Willingness to Pay)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항공사는 고객별 지불의사의 차이를 직접 알 수는 없지만 예약 시점과 운임조건, 여행 패턴 등의 정보를 활용해 서로 다른 가격대의 상품을 제공합니다.

일찍 예약하면 무조건 저렴할까?

항공권은 일찍 구매하면 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을 수 있지만 항상 성립하는 절대적인 공식은 아닙니다.

항공권 가격은 남은 좌석과 예상 수요, 예약 상황, 시기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항공사는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특정 노선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약할지 예측합니다.

예상보다 예약이 빠르게 증가하면 저렴한 운임의 좌석이 줄어들 수 있고 반대로 수요가 예상보다 약하다면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가격 전략이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즉, 항공권 가격은 단순히 출발일까지 남은 날짜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항공사의 핵심 기술, 수익관리란?

항공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수익관리(Revenue Management)입니다.

쉽게 말하면 한정된 좌석을 어떤 고객에게 어떤 가격으로 판매해야 전체 수익을 높일 수 있는지를 관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80석의 비행기가 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180석을 모두 가장 싼 가격으로 판매하면 만석은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고객이 나타나더라도 판매할 좌석이 없습니다.

반대로 모든 좌석을 높은 가격으로만 판매하면 좌석이 많이 남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항공사는 일부 좌석을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면서도 향후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수 있는 수요를 고려해 좌석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좌석을 가장 많이 파는 것이 아니라 전체 좌석에서 얻는 수익을 최적화하는 것입니다.

빈 좌석은 재고와 무엇이 다를까?

항공권은 일반적인 상품과 매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트에서 오늘 팔리지 않은 과자는 유통기한이 충분하다면 내일 다시 판매할 수 있습니다. 의류 매장에서도 오늘 팔리지 않은 옷을 다음 날 다시 진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행기 좌석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후 3시 비행기가 출발하고 나면 그 비행편의 빈 좌석은 다시 판매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품을 소멸성 재고(Perishable Inventory)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호텔 객실도 비슷합니다.

오늘 밤 비어 있던 호텔방을 내일 두 번 판매할 수 없는 것처럼 항공사 역시 특정 비행편의 좌석을 정해진 시간 안에 판매해야 합니다.

그래서 항공사와 호텔 모두 가격과 수요를 정교하게 관리합니다.

성수기 항공권이 비싸지는 이유

여름휴가, 명절, 연말연시처럼 많은 사람이 동시에 이동하려는 시기에는 항공권 가격이 높아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 한 대의 좌석 수는 제한되어 있는데 해당 날짜에 여행하려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나면 좌석의 희소성이 커집니다.

반대로 여행객이 적은 비수기에는 좌석을 채우기 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운임이나 프로모션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항공사는 이런 수요 변화를 예상해 좌석별 운임을 관리합니다.

따라서 같은 노선이라도 언제 여행하느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저가항공사는 왜 항공권을 싸게 팔 수 있을까?

항공사의 가격 전략을 이야기하면 저비용항공사, 이른바 LCC의 수익구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저비용항공사는 기본 운임을 낮추고 필요한 서비스를 별도로 판매하는 방식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위탁수하물, 좌석 지정, 기내식 등 일부 서비스가 별도의 비용으로 제공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소비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서비스만 선택할 수 있고 항공사는 기본 항공권 외에 부가서비스 매출을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항공권 가격만 비교해서는 항공사의 전체 수익구조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한 명의 승객이 항공권 외에 어떤 서비스를 추가로 구매하는지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항공사는 만석이면 무조건 성공한 것일까?

흥미롭게도 비행기가 만석이라고 해서 항공사가 반드시 최고의 수익을 올렸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180석을 모두 매우 낮은 가격에 판매한 비행기와 170석을 더 높은 평균가격으로 판매한 비행기를 비교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비행기는 좌석 점유율이 100%입니다.

두 번째 비행기는 10석이 비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비행편의 전체 매출이 더 높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항공사 입장에서는 좌석 점유율과 함께 좌석당 얼마나 많은 수익을 만들었는지도 중요합니다.

빈 좌석을 무조건 없애는 것이 최고의 전략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출발 직전에도 항공권이 비싼 이유는?

이제 처음의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다.

항공사가 출발 직전까지 가격을 반드시 낮추지 않는 이유는 마지막 순간에 높은 가격을 지불할 고객이 나타날 가능성까지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출장이나 긴급한 일정처럼 출발 날짜를 바꾸기 어려운 고객은 가격이 높더라도 항공권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항공사가 항상 출발 직전에 큰 폭으로 할인한다면 소비자가 구매를 미루는 행동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항공사는 빈 좌석을 하나라도 더 채우는 것과 높은 가격을 지불할 고객에게 좌석을 남겨두는 것 사이에서 계속 계산해야 합니다.

항공사의 진짜 상품은 좌석이 아니라 ‘시간’일지도 모른다

항공권 가격을 자세히 보면 항공사가 판매하는 것이 단순히 의자 하나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목적지라도 날짜와 시간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금요일 저녁에 출발하는 비행편과 평일 새벽 비행편의 수요가 다를 수 있고 휴가철과 비수기의 수요 역시 다릅니다.

결국 항공사는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로 이동할 수 있는 제한된 기회를 판매하는 사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는 비행기가 출발하는 순간 사라집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항공사는 일반적인 상품 판매업보다 훨씬 정교한 가격 전략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 빈 좌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좌석의 가치다

항공사가 빈 좌석을 남기는 것은 분명 아쉬운 일입니다.

이미 비행기가 운항한다면 빈 좌석에 승객 한 명을 더 태워 추가 매출을 얻는 것이 유리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항공사는 특정 좌석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 전체 좌석의 가격과 고객의 구매 행동을 함께 관리합니다.

출발 직전마다 무조건 가격을 낮추면 높은 가격을 지불할 고객까지 기다리게 만들 수 있고 장기적으로 항공권 가격 체계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항공사는 수요를 예측하고 다양한 운임을 만들며 남은 좌석과 예약 시점을 고려해 가격을 조정합니다.

결국 항공권 가격의 핵심은 ‘좌석 하나의 원가가 얼마인가’가 아니라 ‘이 좌석을 언제, 누구에게, 얼마에 판매해야 가장 높은 가치를 만들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우리가 같은 비행기에서 옆 사람과 전혀 다른 가격의 항공권을 들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음에 항공권 가격이 어제보다 갑자기 올라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면 단순히 ‘항공사가 가격을 마음대로 올렸다’고 생각하기보다 **남아 있는 좌석과 예상되는 수요를 놓고 어떤 계산이 이루어지고 있을까?**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비행기 좌석 하나에도 수요와 공급, 가격차별, 지불의사, 소멸성 재고, 수익관리라는 다양한 경제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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